Korean Anarchist Network

 

 

 

아나키스트는 위험하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는 무섭다.

그럴지도 모른다. 체제내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체제에 반대하고 폭탄을 던지는 사람들은 모두 아나키스트로 보일테니까 말이다.

폭탄사건이 터지고 용의자가 체포되면 매스컴은 아나키스트일당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경찰총감은 기자회견을 한다.

 

아나키스트를 체포했다고 발표한 경찰총감이 하는 기자회견치고는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다.

아나키스트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아나키즘운동가의 사주를 받은 적도 없으며 스스로도 아나키스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 아나키스트가 있다는 말인데...

참으로 요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굴 경계해야 하는가?

그런데 폭탄사건이 터질라치면 왜들 그러는지 우선 '이건 아나키스트의 소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권력자의 망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아나키즘의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애당초 아나키즘이라는 말 보다는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먼저 있었다고 한다.

건달, 부랑자들과 같은 부류에 아나키스트를 집어 넣은 사람은 로베스피엘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아나키스트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바부프 등 로베스피엘의 정적들은

"우리와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권력자들은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며 비꼬아 댔다.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을 자신들의 행동원리로 삼은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나서다.

바로 프루동일파가 자기들은 아나키스트라고 하고나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맑시스트와 아나키스트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도 이때부터이다.

맑시스트는 맑스이전에는 없었다.

맑시스트는 아나키스트의 분파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들이 진정한 맑스의 제자라며 정통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나키스트는 자기가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도 아나키스트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고 해도 싫어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사람도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고,

이 사람도 틀림없는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아나키스트의 지평은 한없이 넓게 펼쳐진다.

동양에서는 노장사상이 아나키즘과 이어지고,

서양에선 쩨농과 같은 희랍철학자,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까지도 다름없는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로우라는 사람은 "아나키스트로 성공한 오직 한 사람은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했다.

톨스토이나 간디도 다름 아닌 아나키스트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나키스트일 수 있고 또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아나키스트는 폭탄을 던질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아나키스트가 있고 그래서 그들은 공포에 질리고 밤잠을 설치게 된다.

 

 

아나키즘은 권력이나 권위같은 것은 인간사회에 필요없는 것이며 그런게 없어도 인간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상이다.

뒤집어 말하면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전쟁이나 억압을 규탄하고 고발하는 사상이다.

물론 인간은 현재상황을 그대로 두고 그러한 이상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회를 실현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 자아(自我)를 확립시키지 않으면 안되며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고

또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억제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금욕주의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을 폈고 간디는 물레로 실을 뽑는 일에 만족한 사람이었다.

현대의 히피록은 그러한 흐름에 합류한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다.

 

폭탄을 던지는 아나키스트의 이미지는 19세기말, 바쿠닌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된 아나키스트의 흐름을 이어받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앞에서 고전적 아나키스트와 연결된다고 경찰총감이 지적한 것은 이들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테러리즘적이고 조직적인 아나키스트운동은 20세기 전반에 와서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그러한 아나키스트를 체포했다고 하면 그것은 웃기는 일이다.

 

아나키즘은 멸망하지 않았다.

폭탄사건의 용의자들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을 아나키스트라고 해도 상관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을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면 비틀즈나 롤링스톤스도 그보다 더한 아나키스트인 것이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것은 현대의 아나키즘이 이러 저러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앱터와 제임스 로올이 함께 편찬한 <현대 아나키즘>을 읽으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또 로올이 저술한 '아나키스트'를 읽어도 아나키즘의 역사적 지평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를 체포했다고 보도한 매스컴이나 경찰도 아나키즘의 진실한 무서움을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권력자는 법률로 묶고, 형벌로 협박하고 그리고 자기들이 지도하는 질서 안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 국민은 아무것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도, 법률도, 또 지도자가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비로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결국 권력자들에게 중앙집권에 반대하는 사상은 몇 사람의 폭탄보다 훨씬 무서운 사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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