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narchist Network

 

아래 글은 지금은 없어진 스코잉크의 홈페이지에서 약골 가져온 글입니다. 아나키즘과 펑크락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제공하던 스코잉크의 홈페이지가 없어진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아무런 수정없이 이글을 옮겨왔습니다. -약골 주

 

노엄 춈스키의 아나키즘

스코잉크의 서구 아나키즘 이론 번역 소개

앞으로 21세기 인류에 남은 마지막 대안인 아나키즘의 이론을 번역/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한다. 우선 첫째로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미디어 비판 이론가, 미국 대외 정책 비판가, 아나키스트 이론가이자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노엄 춈스키의 입장을 소개한다. 이 글은 국제 무정부주의자 동맹(IAL)의 부의장이자 한국 지부장인 약골(Dopehead)가 추천하였다. 춈스키의 입장이 현대 서구 아나키즘 정치 운동의 주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본인의 입장과도 일치하지않는 부분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류의 글을 번역하는 경험이 일천한 관계로 혹시 생경한 표현이나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본인에게 을 보내주기 바란다.

"노엄 춈스키의 아나키즘에 대하여(Noam Chomsky on Anarchism)"

톰 레인(Tom Lane)

1996년 12월 23일

소개의 글

춈스키가 지난 30년 간 아나키즘에 대하여 상당한 양의 글을 써왔음에도 사람들은 자주 그에게 사회 변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곤한다. 그의 정치 분석은 항상 읽는 이들로 하여금 세계가 운영되는 방식에 대하여 분개하게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춈스키가 도대체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이해못하고 있다. 그들은 그의 분석들에 대하여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가 그의 목표와 전략를 제시할 때도 비슷한 수준의 정확성과 분명함을 기대하지만, 그가 대부분의 경우 자유 의지적(libertarian)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의 천명에 그치는 것에 대하여 실망하기 마련이다. 즉 많은 사람들은 한 명의 위대한 지식인이 그들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따르기만하면 밝은 내일로 이르는 마스터 플랜을 제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춈스키는 그러한 류의 선언을 하는 것을 회피한다. 그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 조직은 어떠한 특정한 형태를 취할 것인지 예측하거나 무엇이 현재의 체제을 대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대안인지 아는 것 조차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경험의) 과정 동안 우리는 우리의 미래 사회가 어떠한 특정한 형태가 되더라도 관계 없이 이의 기저에 깔릴 일반적 원칙들의 인도를 받아야한다. 춈스키에게 이러한 원칙들의 근원은 "아나키즘"으로 알려진 역사적인 사상/실천의 경향성이다.

춈스키는 아나키즘에 대해서 매우 일반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내가 제기한 아나키즘에 관한 질문들에 응답하면서 "나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쓰려 노력한 적이 한번도 없고, 내가 아는 한 다른 사람들이 쓴, 권할만한 저작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나키즘에 대하여 여기 저기 간헐적으로, 특히 최근의 "권력과 전망(Power and Prospects)" 등에 저술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관심있는 것은 적용의 문제이지만, 이는 보통 시간 및 장소적인 상황의 제약을 받는다"라고 생각한다.

춈스키는 "나는 남미에서 이러한 주제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이야기하였고, 더욱 중요하게는 실제로 상당히 아나키즘적인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뿐만 아니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마존 강 유역에 위치한 벨레른(Belern - 나는 이 곳에 대하여 전혀 몰랐었다. 우리의 친구들이 이러한 곳에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는 곳에 이르기까지 각처의 생기있고, 흥미로운 아나키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들과의 토론은 내가 이 곳에서 흔히 보는 것 보다 더욱 초점있고, 구체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말에서처럼, 이러한 질문에 대한 춈스키의 답변은 일반적이고, 간결하다. 그러나, 그의 아나키즘에 대한 간단한 소개인 그러한 답변들은 독자들을 이런 주제에 대한 그의 다른 저술들로 인도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더욱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위해 일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나키즘이라는 컨셉트를 개발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

톰 레인(Tom Lane)

아나키즘에 관한 8개의 질문에 대한 춈스키의 답변

전체 질문에 대한 전반적인 코멘트

아무도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를 독점할 수 없다. 그 용어는 광법위하게 다양한 사상과 실천의 상이한 조류들을 일컬어왔다. 수많은 자칭 아나키스트들이 자신들의 방식만이 올바른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이름을 사용할 자격조차 없다고 (또는 이런 저런 유형의 범죄자에 지나지않는다고) 주장한다. 현대 아나키즘 관련 문헌들을 보면, 특히 서구/지식인 서클(그들은 이 용어를 싫어할 수도 있다)의 문헌들을 보면, 상당한 부분이 맑스-레닌주의 종파주의 문헌의 경우처럼 상대방의 편향에 대한 비난 일색인 것을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류의 문헌들이 건설적인 문헌을 숫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올바른 방식"에 대한 나의 관점에 대한 확신이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들 - 심지어 좋은 친구들의 - 의 자신감 넘치는 선언에도 별 감동을 받지 않는다. 나는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것이 지나치게 적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장기적 비젼, 우리의 목표, 우리의 이상을 세울 수 있고, 실제적으로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헌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간극은 상당한 것이 대분분의 경우이다. 그리고 나는 매우 모호하고 일반적인 차원을 제외하고는 이런 간극을 메우는 방법을 좀처럼 보지 못한다. 나의 이러한 성향(혹은 결함?)은 귀하의 질의에 대한 간략한 대답에서 두드러질 것이다.

1. 아나키스트 사상의 지성사적인 근원은 무엇이며, 어떠한 운동이 생성되었고, 무엇이 그러한 운동을 역사적으로 활성화시켰는가?

내가 관심있는 아나키스트 사상의 조류(내가 관심있는 조류는 많다)는 내가 생각하기엔 계몽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고, 심지어 흥미롭게도 데카르트 류의 이성주의처럼 일반적으로 반동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분야까지 포함하는 17세기의 과학 혁명으로까지 그 뿌리를 추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문헌들이 있다(하나의 예를 들자면 사상-역사가 해리 브랙킨 - Harry Bracken - 이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글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 다시 요점을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중요한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저술가이자 운동가인 루돌프 락커(Rudolf Rocker)의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은 산업 자본주의의 암초에 좌초되어 다시는 그 원형을 되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나는 물론 1930년대의 락커를 말한다. 수십년 후 그는 생각을 달리하였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 사상은 끝없이 재창조되어왔고, 내가 보기에 이는 아나키즘이 인간의 진정한 필요와 인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마 스페인 내전이 가장 중요한 케이스가 아니었나한다. 그러나, 우리는 1936년 이래로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 스페인을 휩쓸었던 이 아나키스트 혁명이 결코 자연발생적인 돌발 사태가 아니라 수십년 간의 교육, 조직, 투쟁, 패배, 그리고 승리를 통하여 준비되어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당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래서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혁명은) 모든 주요 권력 체제들 - 스탈린주의, 파시즘, 서구 자유주의, 대부분의 지적인 조류와 그들의 교리 기관들 - 의 격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들은 합심하여 아나키스트 혁명을 비난하고, 파괴하려하였고, 결국엔 그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스페인 내전의) 중요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2. 비판자들은 아나키즘은 "형태가 없고, 공상주의(utopian)적"이라고 불평한다. 이에 대하여 귀하는 역사적인 개별적인 단계마다 철폐되어야할 고유한 형태의 권위와 억압이 있어왔으므로, 어떠한 고정된 교조를 적용시킬 수는 없는 것이라고 답변해왔다. 귀하가 생각하기엔 현 시대에 있어선 아나키즘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야한다고 보는가?

나는 아나키즘은 형태가 없고, 공상주의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아나키즘이)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맑스-레닌주의나 지난 세월동안 설명하기 쉬운 이유들로 권력자들과 그들의 지성적 시녀들에게 어필하였던 다른 이데올로기들의 공허한 교조에 비하여 더욱 (형태가 없고, 공상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러한 일반적인 무형성(無形性)과 (가끔은 지식인들의 이기적인 이해 때문에 거창한 언어로 위장된) 지성적인 공허는 우리가 인간 사회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에 대해서 매우 많은 것을 알고 있지못하고, 인간 사회를 재구성하고 건설하는 방법에 대해서 유효성이 제한된 직관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아나키즘은 '입증을 해야하는 부담'은 오히려 권위와 지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게게 있다는 사상의 표현이다. 그들은 강력한 논쟁으로 그러한 결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들이 수호하려는 제도들은 정당하지못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우리가 정당하지 못한 권위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는 상황과 조건에 달려있고, 어떠한 공식도 있을 수 없다. 현 시대에 있어서 잇슈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여기 저기서 떠오르고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 내, 또는 다른 곳에서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부터 국제적 정치/경제 질서까지. 그리고 권위에 도전하고, 권위가 권위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 사상은 모든 차원에서 적절하다.

3. 아나키즘은 인간의 본성이 어떠하다는 개념에 기반하고 있는가? 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노동에 대한 인센티브는 감소할 것인가? 정부의 부재가 강자의 약자 지배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과연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과도한 갈등, 우유 부단, 그리고 '우중(愚衆)들의 지배' - mob rule - 을 초래할 것인가?

내가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로는, 그것은 인간 본성의 핵심 요소는 단결, 상호 부조, 동정,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등의 정서를 포함하고 있다는 희망(우리가 이 문제에 무지한 현 단계에서는 희망 이상이 될 수가 없다)에 기반하고 있다.

과연 사람들은 평등한 사회에서 덜 노동할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생존의 필요에 의해서, 혹은 물질적인 보상에 의해서 노동을 하도록 강제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병적 심리이다. 마치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고문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창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핵(노소를 막론하고 상황이 허락하는대로 그러는 것을 가끔씩 목격할 수 있는 것처럼)이라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교리가 맞는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러한 식의 사고에 회의적일 것이다. 이러한 식의 사고는 권력과 권위에 유용할 뿐 다른 아무 쓸모가 없다.

정부의 부재가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를 가능케할 것인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범죄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사회 조직이 건설되어야할 것이다(이에 대해선 많은 가능성이 있다). 민주적인 의사 결정의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답은 알 수가 없다. 시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알아 보자.

4. 아나키즘은 가끔 "자유 의지적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로 불리운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은 레닌주의와 같이 흔히 사회주의로 불리우는 이데올로기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레닌주의 교리는 하나의 전위당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 후 인민을 경제 개발로 동원, 설명되지않은 일종의 기적을 통하여, 자유와 정의를 실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당연히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국가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급진적 지식인들에게 상당히 어필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나는 이것이 논리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도 합리적이라고 보지않는다. 그리고 또한 이를 진지하게 보아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자유의지적 사회주의(맑스주의의 주류 대부분을 포함하여)는 정당하게 이것 - 레닌주의 -을 경멸적으로 일축해버렸다.

5. 많은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s)"들은 아나키즘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지 하고, 다룬 사람들과의 자유로이 접촉할 수 있는 자유라고 주장한다. 귀하는 자본주의가 아나키즘과 양립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나의 의견으로는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는 만일 실행된다면 인간 역사상 유례없는 전제와 억압의 형태로 귀결될 교리 체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 무시무시한 사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한 치도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사상들은 곧 바로 (이 사상을 실현하겠다는) 터무니없는 오류를 저지른 사회 자체를 파괴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자와 굶주리는 백성 사이의 "자유 계약" 사상은 (내가 보기에는 멍청한) 사상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논하는 학술 토론장에서나 잠깐 들을 만하지 다른 곳에선 일고의 여지도 없는, 밥맛 떨어지는 농담일 뿐이다.

그러나, 나도 전체적인 잇슈들의 차원에서는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과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과 한 동안은 그들의 간행물에만 글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는 교리의 결과나 그들의 사상의 심오한 도덕적 파산을 인식하고 있지못하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합리성(rationality)에 대한 보기 드문 헌신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한다.

6. 아나키즘의 원칙은 어떻게 교육에 적용되는가? 점수, 자격 조건, 시험 등은 과연 좋은 것들인가? 어떤 종류의 환경이 자유로운 사상과 지적인 성장을 용이하게 할 것인가?

부분적으로 이러한 분야에서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훌륭한 교육이라함은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좋은 가르침의 방식은 식물의 줄기 속을 물로 채우는 것보다 식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러한 생각은 별로 오리지널한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의 문헌으로부터 인용한 것이라는 것을 덧붙인다)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생각하기에 유효한 일반 원칙이다. 그것들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는 겸허한 자세와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일천한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하여 케이스 별로 평가되어야할 것이다.

7. 가능하다면 이상적인 아나키스트 사회가 어떻게 하루 하루 운영되는가를 설명해주기 바란다. 어떠한 종류의 경제적 / 정치적 제도들이 존재하고, 운영될 것인가? 화폐는 계속 존재할 것인가? 우리는 상점에서 쇼핑을 할 것인가? 우리는 자택을 소유할 것인가? 법은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범죄를 막을 것인가?

나는 이러한 것들을 대답하려고 시도하지 않겠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투쟁과 실험으로부터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8.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있어서 아나키즘의 실현 전망은 어떠한가?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하는가?

자유와 정의의 전망은 무한하다. 우리가 취해야할 행동은 우리가 무엇을 성취하려하는가에 달려있다. 어떠한 일반적인 대답도 가능하지않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방금 떠나온) 브라질의 농촌 노동자의 빼어난 슬로우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우리의 바닥을 넓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다 결국에 쇠창살을 부수고 나갈때까지 말이다. 가끔은 외부의 더욱 악랄한 약탈자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야할 때도 있다. 가령, 예를 들면 약탈자적인 사적인 전제(tyranny)로부터 정당하지 못한 국가 권력을 보호하는 것은 자유와 정의에 헌신하는 어떠한 사람 -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먹을 식량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 에게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자유 의지론자(libertarian)나 아나키스트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내가 보기에는 좌익으로 자처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실천적인 면에서 고통을 겪는 인민의 삶과 정당한 원망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자기 파괴적이고 비이성적인 충동 중의 하나라 고 생각한다.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고, 반박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단 우리가 슬로우건의 공허한 제창 - 내가 보기엔 좌익 내에서의 논쟁 자체를 배제한다. 이는 애석한 일이다 - 을 초월할 수 있는 콘텍스트에서만 말이다.

노엄(Noam)

다른 편지에서 춈스키는 다음과 같이 미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제공했다:

미래 사회에 대하여, 나는...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내가 아이였을 때부터 계속 관심있어왔던 것이다. 아마 1940년 정도에 Diego Abad de Santillan의 '혁명 이후(After the Revolution)'라는 흥미로운 책을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의 아나키스트 동지들을 비판하고, 아나코 생디칼리스트 스페인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상세하게 서술했다(이 것은 50년도 넘은 일이므로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않기를 바란다). 그 당시 나의 느낌은 그의 설명이 매우 그럴 듯해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한 사회에 대한 질문을 그렇게 상세하게 대답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더욱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는 우리가 과연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를 깊게 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간 마이크 알버트(Mike Albert)씨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은 논의를 가져왔다. 그는 나로 하여금 사회가 운영되어야하는 방식에 대한 나의 입장을 개진하도록, 또는 최소한 자신의 "참여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 응답하도록 고무해왔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위와 같은 이유로 뒤로 물러 섰다. 나에겐 대부분의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은 실험에 의해서 배워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 (시장이 어떠한 사회에서라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논리학을 꺼낼 것도 없이 역사적 기록이 어떠한 기준이 될 수 있다면 분명히 제한된 예이다)의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시장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이는 시장 활동을 제거한 체제가 더욱 바람직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엔 충분하지않다. 이는 단순히 논리학의 문제인 것이고, 우리가 결코 해답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모든 것에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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