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narchist Network

오늘예감 이라는 잡지가 있었습니다.

슬프군요. 있었습니다, 라고 말을 해야 하니. 비타협적 Do It Yourself 정신과 Fuck Shit Up 정신으로 똘똘 뭉친 일군의 좌익 아나키 문화비평 예술 문필가 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잡지죠. 1994년 창간하여 우여곡절 끝에 1997년 까지 존속하였습니다. 약골과는 이래저래 관계가 많은 잡지 되겠습니다. 지금 다시 뒤져보면 좋은 글들이 많이 발견되더군요. 아래 글은 오늘예감 96년 가을호의 시작하는 글입니다.

 

 

어머니, 조국 없는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

오늘예감 편집장 한정수

 

자고 나면 달라지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몇날 몇일을 씩씩하게 잠들어도 눈뜨면 항상 그 모양,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아침 신문에는 여전히 명사(名詞)와 사진만 바뀐 톱기사가 실리고, TV 뉴스에는 변함없이 막히는 출근길 정보와 돌고 도는 날씨이야기, 적당한 공무원비리와 사회문제 등속을 낭랑이 읊어대는데, 아, 정말 환장할 노릇입니다. 자고 나면 무단횡단이 질서가 되고, 자고 나면 저녁밥을 먹고 일터로 나가거나, 자고 나면 청와대 자리에 소문난 칼국수 집이 들어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서점엘 가보아도 새로운 것 하나 없습니다. 사람사이도 한결같이 신산스럽기만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더니, 이거 정말 지루한 저주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꿈꾸길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꿈은 다소 허황하고 바보스러울지언정 이 사회처럼 반복되는 부산스러움을 늘어놓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화가 납니다. 프로이트 이래로 꿈조차 사회적으로 꾸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동떨어져 마음껏 비약하고 마음껏 고립되는 판타지는 동화책 속에 있는 꿈에나 들어있죠. 현실의(?) 꿈에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어요. 잠자는 건 휴식이 되지 못하고 꿈꾸는 건 도피가 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도대체 인간이 어쩌다가 이리 한심한 사회성과 콤플렉스로 똘똘 뭉치게 되었을까요.

 

똑똑한 분들이 일컬어 '폭력'이라고 합디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 '제도적' 폭력, '미시적 폭력'이라는 거죠. 하긴 옳은 말이죠.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그래. 자유롭게 꿈꿀 수 없다는 것, 피곤하고 귀찮아질 때 도망갈 구석 하나 없다는 것, 여하한 상처나 피곤에도 아랑곳 없이 한결같은 세상 속에 의연히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 것들 말이죠. 하긴 요즘은 소통매개가 발달하다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어요. 왜, 사이버스페이스라고 하죠. 존재하는 가상성이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경우도 생겨나고, 그러니 '가상공간'에 기꺼이 중독되는 선구자들도 생겨나구요. 현실이 아닌 곳에서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다른 세상' 아니겠어요. 현실을 치환하는 가상을 '시뮬라크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놈의 시뮬라크르라는 것도 사회성을 온전히 떨구어 내지는 못하더구요. 막말로 주체가 지레 불안한 거죠. 아무런 사회성이 필요치 않은 공간 안에서조차 스스로 사회적 준거들을 마련해두어야 맘이 편한 거죠. 꿈이 검열받는 과정과 너무나 똑같은 것 같아요. 폭력은 이게 진짜 폭력이에요.

 

결국 우리는 마음껏 비약하고 꿈꿀 수 없게 된 모양이에요. 인정하기 싫지만 마침내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꾸며보는 능력을 잃어 버린 거겠죠. 상상력이 없으니 세상이 맨날 요모양이에요. 아무도 새로운 도덕을, 새로운 인간관계를,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못하니 재미없는 세상은 더욱 재미없게 돌아가고 폭력적인 세상은 더욱 폭력적으로 자기유지를 할 수 있게 되죠. 상상력이 거세된 인간이 재미없고 폭력적인 세상을 만든 건지 아니면 재미없고 폭력적인 세상이 인간으로부터 상상력을 거세한 건지는 물론 알 수 없겠지만, 중요한 건 선후관계가 아니라 그 결괍니다. 이제 다른 생각과 다른 도덕과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려면 상큼하게 '상상'하고 아련히 미소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해요. 몸부림치고, 고함을 지르고, 스스로 악해지고, 뻔뻔히 자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소리치는 사람들은 적어도 습관적인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려는 역자장(逆磁場)이나마 간직하고 싶은 겁니다. 맞아요. 그렇다고 세상이 나아질리 없다는 건 그들이 더 잘알겠죠. 그냥 그것만이라도 하고 싶은 거에요.

 

원래의 하나에 반대하기 위해 또 하나의 복제품을 만들고, 그 원본과 복제품이 자랑스레 상호작용하여 또 하나의 '하나'를 만드는 것. 이게 '정반합'의 정체인 것 같아요. 변증법도 사실은 무지 보수적인가봐요. 하긴 역사라는 것 자체가 말도 못하게 보수적인 놈이긴 하죠. 조금도 그 위상이나 본질이 다르지 않은 '정'과 '반'과 '합'이 끊임없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지만 결국 똑같은 지루함이고 천편일률의 부산스러움일 뿐이죠. 개혁이나 혁명이나 모두 지루한 단순노동이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요즘은 특히, 뭐가 진보고 뭐가 보순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상상력이라는 것은 정.반.합 그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아메바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찌르면 들어가고 베면 갈라지지만 끝까지 죽지 않고 빈 곳마다 흩어져 틈입하는, 그런 얄미운 게릴라정신 말이에요. 언제나 거대하고 가지런한 것 중에서는 상상력이 나지 않습니다. 거대하고 가지런한 것들은 최초에 어떤 목적 때문에 그런 괴물로 태어났는지, 무슨 힘으로 자기가 끊임없이 움직이게 됐는지, 또 자기가 어디고 가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움직임을 종내 그칠 수 없는 무지몽매한 코뿔소같은 놈이죠. 시지프스의 비장미조차 없는, 그저 이유도 없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어리석은 놈이에요. 대개 국가라는 놈이 그렇죠.

 

부족간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인간들은 단 한 번도 국가 없이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재'를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고, 인정하기도 차마 두려운 거겠죠. 과연 테레비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비슷할 것도 같지만 테레비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국가'는 일종의 '귀신'같은게 아닐까요.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간섭하고 훼방하는(물론 때때로 복덕을 내려주기도 하는) 귀신 말이에요. 어쨌거나 그 귀신같은 놈이 고리눈을 부릅뜨고 항상 우리의 주변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으니 때때로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죠. 최영장군님을 섬기다 지쳤으니 이번에는 관운장을 섬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아무 귀신도 섬기지 않고 당집 마루에서 그저 배딱지나 덕덕 긁으며 퍼질러 낮잠이나 내리 잤으면 딱 좋겠더라는 말입니다. 무당 굿 안하고 뭐하느냐 따지는 놈짜라도 있으면 옳다꾸나 네가 해라 방울도 던져 주고 방짜칼도 던져주고 다 던져 줘버러고 말이죠. 주민등록증이고 태극기고 다 던져 줘버리고 말이죠.

 

아무튼 사회성 일반- 그 핵심으로서의 국가, 그것이 타고앉은 수많은 폭력적 가치들- 그 한 축으로서의 '아름다움' 따위를 향해 시끄럽게 떠들어보았습니다. 주장이 간소해진 반면 더 요란스러워지거나 시끄러워졌어요. 뭐 잡지는 말 그대로 잡스러워야 잡지죠. 언제나처럼 점잖은 글, 쓰레기같은 글, 아름다운 글, 바보같은 글, 몽롱한 글, 충혈된 글들이 사이좋게 늘어서 있습니다. 그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형식의 글등 중에 단 하나의 글만이라도 어느 독자의 구미에 맞아 떨어진다면 저희로선 더할 나위 없는 보람과 기쁨이겠네요.

뭐, 아니나 다를까, 쟤네들 또 이상한 짓 저지르고 민망하니까 주절주절 눙치려 드는군, 하시는 분들이 벌써 계실 거에요. <오늘예감>이 하는 일이란 게 뭐 맨날 그렇죠. <오늘예감>은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쪽 보다는 낡은 것을 욕하는 쪽에 더 골몰하는 악취미가 하긴, 있습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죠. 이번호 '소통을 위하여'에 독자의견을 보내주신 어느 분 曰, '차라리 솔직해지라, 우리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이야기하라' 시네요. 우리도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시간을 조금 더 달라'쪽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오늘예감>은 끝까지 '인간이 제대로 사는 방법'을 모를 것 같지만 그렇다고 잠자코 있고 싶지는 않거든요. 아주 뻔뻔하게 계속 떠들기 작전이에요. 얻어맞을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왜 우리보다 똑똑한 독자들에게 감히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할까요. 우리는 그저 이런 생각들을 자꾸 해본다. 그거 훔쳐보실 분들 사시고, 어른들은 가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할 수 있겠죠. 수강신청하는 심정으로 잡지를 사시는 분들도 계시듯이 극장가 기웃거리는 여드름쟁이의 치기로 잡지를 사시는 분들도 계셔야 공평하죠. 너도 나도 민주주의 하자는 세상 아닙니까.

이런, 어쩌다보니 Editorial이 아니라 의뭉스런 술자리 너스레같은 분위기로 흘러갔군요.

아, 끊임없이 스스로를 번복하는 힘이야 말로 진정한 진보의 힘이다, 라는 경구가 있다네요. 없다면 지금 생긴 거구요.

<오늘예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편집위원들이라고 짐작할 리가 있겠어요. 다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물을 색안경 끼고 불량하게 보는 것, 이거 하나 슬로건처럼 이마에 붙여놓고 잠드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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