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narchist Network

 

 


체 게바라란 누구인가? 그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이며,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백인으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심한 천식을 앓았는데, 천식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훗날 자신을 괴롭혔던 천식은 오히려 활력소였다고 말했다.

게바라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문학소년으로 자랐다. 혁명가가 된 후 전투 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체 게바라는 문학가가 되지 못한 혁명가라는 말을 스스로 할 만큼 그의 글은 뛰어나다. 책 읽는 것 이외에도 운동을 좋아해 청소년 시절에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생각이 자유롭고 당당했던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한 후 아르헨티나 횡단 여행과 남미대륙을 여행했다. 남미대륙을 여행하면서 그의 혁명에 대한 싹이 텄다. 그곳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만났고, 압제자들에게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하게 됐다. 그는 남미 대륙 여행중 의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돌아오지만, 의사가 된지 두 달만에 안정되고 편안한 삶이 보장된 의사 생활을 버리고 볼리비아로 떠난다. 볼리비아에서는 혁명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어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그는 페루행을 원하는 볼리비아 인디오들과 페루로 향한 후 과테말라로 들어간다. 과테말라에서 그는 혁명을 체험한다. 특히 괴테말라 신혁명정부를 이끌고 있던 야코보 아르벤즈의 말에 큰 감명을 받고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을 굳힌다. 야코보 아르벤즈의 연설 내용은 '인간은 물질적으로 굶주렸을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에 굶주려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야코보 아르벤즈는 과테말라 혁명에 실패하고 여기에 가담했던 체 게바라는 총살자 명단에 오르게 되어 멕시코로 탈출하게 된다.

멕시코에서 그는 혁명 이론을 공부하고 혁명 동지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다.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서 쿠바 혁명을 위해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으로 들어간 체 게바라는 이제 실천하는 혁명가가 된다.

쿠바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피델 카스트로는 물론 체 게바라도 아마추어 혁명가일 뿐이었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체 게바라는 이론가로 변신해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정부를 세우고, 은행 총재, 산업 부흥상, 피델 카스트로의 전권대사 등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이론서와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평생을 바쳐도 이룰까 말까 한 일들을 몇 년 동안에 모두 이룬 그는 쿠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의욕적으로 일했지만 경제 정책은 실패하고 만다. 특히 그의 금욕주의는 소련은 물론 여러 동구권 국가와 주위 사람들에게서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체 게바라는 자신은 혁명가일 뿐 정치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피델 카스트로에게 편지를 남긴 채 혁명 중인 콩고로 떠나지만, 혁명을 이루지는 못하고 변장을 한 채 다시 쿠바로 돌아오고 만다. 쿠바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남미 대륙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들어간다.

당시 볼리비아는 바르엔토스 독재 정부의 압제에 있었다.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들어간 체 게바라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전투가 있던 날에도 일기는 어김없이 쓰여졌고, 매월 말일에는 그 달의 일기 내용을 분석해서 정리해 놓았다. 체포되기 전날까지 메모 같은 일기를 남긴 체 게바라는 1967년 10월 9일, 39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피델 카스트로에게 전해 주십시오. 이 실패가 결코 혁명의 종말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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